전 세계 기업들이 에너지 사용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바로 ‘RE100’이라는 글로벌 캠페인을 통해서다.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의 줄임말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자발적 약속이다. 애플, 구글, BMW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면서 환경 경영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이 합류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본문에서는 RE100의 정의와 배경, 참여 기업의 변화, 그리고 한국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RE100의 정의와 의미: 왜 100% 재생에너지인가?
RE100은 2014년 비영리단체 The Climate Group과 CDP(Carbon Disclosure Project)가 공동으로 시작한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참여 기업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공개한다.
이 캠페인은 단순한 환경운동을 넘어서,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략과 직결된 핵심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전 세계가 탄소중립(Net-Zero) 시대를 선언한 가운데, RE100은 실질적인 기업 차원의 실천 방법으로 기능한다.
RE100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의 공급망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애플은 자사뿐 아니라 협력사에도 RE100 참여를 권장하고 있으며, 글로벌 부품 공급사들에게도 ‘RE100 미참여 시 거래 축소’ 등의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즉, 기업이 스스로 친환경 전략을 채택하지 않으면 글로벌 공급망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RE100 참여가 기업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이유
ESG 경영이 단순한 ‘이미지 메이킹’을 넘어, 투자와 생존의 기준이 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이미 RE100 등 친환경 정책을 채택하지 않는 기업에는 투자를 축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기관투자자들은 기업의 환경 정책을 재무적 리스크로 간주하고 평가하고 있다.
RE100 참여 기업들은 ESG 점수 향상뿐 아니라, 글로벌 고객 및 투자자 신뢰 확보라는 강력한 이점을 갖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BMW다. 이들은 RE100 참여 이후 탄소 배출량을 대폭 줄였으며, 동시에 브랜드 이미지 및 주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대표 기업들도 뒤늦게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2년 전 세계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신환경경영전략’을 발표했으며, SK하이닉스는 2050년까지 전 사업장 RE100 달성을 선언했다. 특히 제조업 기반의 한국 산업구조상, 전력 사용량이 많아 재생에너지 조달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고객사의 요구, ESG 평가 대응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RE100의 확산과 한국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
2024년 기준 전 세계 RE100 참여 기업 수는 400개를 넘어서며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참여 기업들은 IT, 제조, 유통, 패션, 식음료, 금융 등 거의 모든 산업군에 걸쳐 있으며, 글로벌 기업 간 ‘RE100 이행율 경쟁’이 벌어지고 있을 정도다.
한국은 뒤늦게 RE100 흐름에 뛰어들었지만, 국내 RE100 제도 기반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전력시장은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으며,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선택적으로 구매하는 구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RE100 이행 수단으로 ‘녹색프리미엄’, ‘제3자 PPA(전력구매계약)’, ‘REC 구매’ 등을 마련했지만, 가격이나 유통 구조에서 제약이 많아 대기업 외 중소기업의 참여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에서 RE100 미이행 기업에 대한 직·간접 압박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곧 한국 수출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한 환경 이미지가 아니라, 수출 유지와 글로벌 고객 유치의 필수 전략으로 RE100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RE100은 단순한 친환경 운동이 아닌, 글로벌 기업 생존전략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전 세계가 탈탄소, 지속가능성 중심의 시장 구조로 재편되는 가운데, 재생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RE100 참여뿐 아니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에너지 전략과 실행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 RE100은 곧 미래 생존의 언어다.